대한민국 국방부

잠수함

원자력 추진 체계

제1, 2차세계대전시 U-보트는 적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전쟁을 통하여 잠수함은 무기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세계 각국에서 잠수함 확보에 열을 올렸다. 제 1,2차세계대전시 U-보트의 활약상에 대하여 알아보자.

1차대전(1914.7~1918.11) 중의 잠수함전은 주로 독일을 중심으로한 U-보트 작전이었으며, 1차세계대전 당시 전 세계 해군은 거함.거포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전쟁발발 직후인 1914년 9월 독일의 U-보트(U-21)가 3,000톤급 영국 순양함 "패스파인더(Pathfinder)"를 어뢰로 공격하여 최초로 전투함을 침몰시켰고, 약 보름 후 U-보트(U-9)는 1시간만에 12,000톤급 영국 순양함 3척을 침몰시켰다.

1차대전 발발직후 독일 U-보트의 작전 목적은 북해에서 독일을 봉쇄하고 있는 영국 전함을 공격하는 것이었으나,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영국에 물자를 수송하는 상선을 공격함으로서 영국을 고립화 시키는 것이 주목적이 되었다.

1차대전 개전시 독일 U-보트는 수상에서 수중보다 속도가 빨랐으며, 어뢰뿐 아니라 소형함을 침몰시키기 위해 함포도 탑재하였다. 개전초기 독일은 잠수함에 의한 해상교통로 파괴작전을 실시하기로 결정하여 군함과 상선을 가리지 않고 영국의 전쟁물자를 수송한다고 판단되는 선박은 전부 공격하였다.
당시 영국은 U-보트에 대한 대항책으로 수중에 그물망을 가설하기도 하고, 그물망에 폭발물을 설치하여 접촉시 폭발하도록 하기도 하였다. 또는 지그재그(ZIGZAG) 항법으로 잠수함을 회피하기도 하였고, 유인함(일명 Q-Ship)을 이용하여 위장상태에서 잠수함을 사정 거리 내로 유인한 뒤 일제사격을 하기도 하였다.

1917년부터 영국은 상선단에 호송함을 배치하여 물자를 수송하는 호송선단을 구성하였고, 아스딕(ASDIC = 소나)이 발명되어 수중 잠수함 탐지수단으로 등장하였다. 아스딕은 속수무책이었던 잠수함을 접촉하여 공격을 가능케 함으로써 U-보트의 해상교통로 파괴작전에 제동을 거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독일의 U-보트에 의한 침몰선박 수는 극에 달했으며, 아스딕으로 잠수함을 탐지한다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전쟁후반기인 1917년 독일해군은 U- 보트 수를 증가시켜 무자비한 해상교통로 파괴작전을 실시하였고, 해상교통로가 차단된 영국은 대외 무역과 대륙의 전선에 증원병과 군수지원이 불가능하게 되어 항복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1918년에 미국이 참전하여 강력한 호송단대의 구성과 함정.항공기를 비롯한 방대한 대잠전력이 투입됨으로써 아사 직전의 영국은 겨우 기사회생하였다.

U-보트는 1915년부터 1918년 사이에 2,500여 차례의 전투를 치렀는데 영국 선박의 90%가 잠수함에 의해 침몰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독일의 잠수함은 승전국에 의하여 압류 당하며 독인은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거 잠수함을 보유하지 못하게 되었다.

1935년 7월 영.독은 양국이 똑같은 수의 잠수함을 보유한다는 협정이 체결되어 독일은 다시금 잠수함 함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1939년 2차대전(1939.9~1945.8)이 발발했을 때 독일은 56척의 U-보트 및 매달 한두 척의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독일은 1941년부터 아래 그림과 같은 ⅦC형이라는 강력한 U-보트를 대량 건조하였고, 이는 수중에서 수상보다 속도가 빨랐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군함이 물자수송용 상선을 호위하는 호송선단 체제를 도입하였으며, 독일은 호송선단에 대한 대응책으로 늑대 떼 전술(Wolf Pack)을 개발하였다. 이 전술은 U-보트나 항공기가 호위함을 발견하면 그 해역근처에 있는 다른 U-보트에 연락하여 지정된 위치로 이동 후, 호위함에 대하여 야간 집중공격을 하는 전술이다. 영국은 늑대 떼 전술 대응책으로 1941년 표면탐색 레이더를 개발하였고, 또 호위함에 탑재할 수 있는 방향탐지기도 개발해 냄으로써 U-보트가 수상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500미터 이내의 정확도로 탐지해 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때부터 U-보트는 탐지 당하지 않기 위해서 주로 수중항해를 해야만 했다.

1940년 10월 영국해군에 역부족 이었던 독일은 방대한 잠수함을 건조하여 무제한 잠수함작전을 시작하였고, 영국은 1차대전과 유사하게 또다시 무역이 차단되어 전쟁수행능력을 상실할 정도까지 되었으나, 이번에도 미국이 참전함으로써 가까스로 회생하였다.

2차대전 후반기에 영국에서는 비행기탑재용 단파레이더를 개발하였다. 이것은 기존 U-보트의 레이더 전파탐지기에는 탐지되지 않기 때문에 U-보트에 대하여 상당한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 그림은 2차대전 중인 1942년 항공기로부터 공격받는 U-보트 사진이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는 계속 수중에서 체류하기 위하여 스노켈장치를 도입하여 비행기로부터 공격을 감소시켰으며, 새로운 U-보트 U-ⅩⅩΙ형을 설계하였다. 이러한 스노켈을 장착한 신형 U-보트는 연합국 측에서 상당히 두려워하고 있었으나 전쟁은 곧 끝나고 말았다.

제2차 대전을 통해서 독일의 잠수함 건조비와 연합국의 대잠세력과 상실된 상선의 건조비는 1:15이었으며, U-보트 1척을 공격하기 위하여 25척의 대잠함과 100대의 항공기를 동원한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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